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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전망대 2012. 3. 5. 19:13
안경애 디지털타임스 정경과학부 차장


  우수한 학생들의 이공계 기피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학생들이 서울대 공대보다 지방대 의대를 선호하고, 대학에서 자연과학이나 공학을 전공하고도 평생 몸담을 직업으로는 의사나 약사를 선택하는 이들이 이상해 보이지 않은 지 오래다. 

  최근 2012학년도 서울대 수시모집에 최연소로 합격한 한 학생이 서울대 컴퓨터공학부를 포기하고 연세대 치의예과에 진학한 사례는 이런 세태를 분명하게 보여줬다. 

  서울대 컴퓨터공학부와 연세대 치대에 수시모집으로 모두 합격한 이 학생은 언론 인터뷰에서 "서울대에 진학한다면 원래 좋아했던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한 것이고, 연세대에 간다면 더 안정적인 미래를 택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결국 그는 후자를 선택했다. 

  현실적으로 주판알을 굴려보면 그들의 선택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의사나 변호사 같은 ‘평생 라이선스’를 가진 이들에 비해 자연과학이나 공학을 전공한 이들은 일단 허용된 활동기간이 짧다. 수명은 갈수록 길어지고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점점 사라지는 가운데 평생 써먹을 수 있는 라이선스가 있다는 것은 큰 매력이다. 그렇다 보니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선진국들에서도 나타난다. 

  그러나 이런 흐름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은 너무도 중요한 영역이다. 서울대 의대 교수이지만 환자를 보는 게 아니라 뇌를 연구하는 서유헌 교수는 지난 2009년 최고과학기술인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의사가 매일 환자를 봐도 평생 10만명 정도밖에 볼 수 없지만 성공적인 연구성과는 수억명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이 가진 위력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사실 이공계에 몸담으면서, 과학기술에 대한 순수한 열정만으로 연구실에서 밤을 밝히는 젊은이들은 무수히 많다. 최근 만난 30대 초반의 젊은 여성과학자는 2년간 이틀에 한번, 여섯시간 정도를 자며 씻고 먹는 시간까지 아껴가면서 11편의 논문에 주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신들린 듯한 연구 끝에 그녀는 남들이 4년만에 따는 박사학위를 그 절반인 2년만에 받았다.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 때문에 중소기업에 취직해 일하다 연구와 배움에 대한 갈증으로 석사과정을 한 그녀는 다시 대기업 입사 1년여만에 박사학위에 도전해 이같은 기록을 이뤄냈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나는 돌아돌아 길을 걸어왔지만 후배들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고 더 큰 꿈을 꿨으면 한다”며 “연구자들이 평생 연구에 몰입할 수 있게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해 처음 시작한 ‘대통령박사후과정펠로십’ 대상자 15명 중 한명으로 뽑히고, 올초 한 출연연에 들어간 30대 초반의 여성과학자는 “사실 어릴 때부터 과학자가 꿈이었지만 방법을 몰라 꿈으로만 남겨뒀었다”며 “연구를 하면 할수록 희열이 커진다”고 밝혔다. 

  젊은 과학자들은 기존 연구분야 구분을 깨는 과감한 융합연구로 과학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다행히 정부는 최근 박사후연구원이나 신진교수급 연구자들에 대한 지원을 크게 늘리고 있다. 중견급 이상 연구자들이 주로 수혜를 입었던 정부 연구지원과제에서 젊은 연구자들의 몫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머물지 않고 출연연, 대학, 기업을 포함한 과학기술 생태계 전반을 바꾸는 정성이 필요하다. 과학기술을 경제발전의 수단이 아닌 그 자체로 육성하고 지원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정부보다 더 많은 돈을 R&D에 쓰는 기업의 몫도 크다. 연구기관이나 대학에 비해 기업에서 일하는 이공계 인력들의 수명은 훨씬 짧다. 나이 마흔, 쉰이 넘어도 ‘명장’으로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한 우물을 파는 이공분야 전문가들이 기업에 의해 길러져야 한다. 바로 상품으로 연결되는 연구뿐만 아니라 인류 발전으로 이어지는 기초과학 연구를 지원하는 기업도 이제 한국에서 나올 때가 됐다. 

  과학계 스스로도 이공계 기피 탓만 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과학기술의 중요성과 연구의 기쁨, 훌륭한 성과를 알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 국민 세금으로 연구하는 과학기술자에게 과학기술을 널리 알리는 일은 마땅히 해야 할 의무다. 이공계 분야에 꿈이 있지만 길을 몰라 찾지 못하는 젊은 후배들에게 시야를 넓혀주고 경험하게 해주는 멘토 역할도 해야 한다. 

  이공계 대신 의대를 선택하는 학생들보다, 의대에 진학하고도 연구가 좋아 의과학을 선택하는 학생들이 더 많아지길, 그래서 그 선택이 ‘연구성과 대박’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santalala88 BlogIcon 류지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전원에 진학하여 기초의학을 전공하려는 학생으로서
    정말, 마음 깊이 와 닿는 말이 많네요.

    생명과학과 학생이라 주변에 의전원에
    진학하려는 친구가 많은데,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글입니다.

    2012.03.05 19:41
    • Favicon of https://happyscientists.tistory.com BlogIcon 마음잇기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기초연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과하지 않죠^^ 류지님처럼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과학도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마음잇기 마을도 함께 응원할께요!

      2012.03.08 16:5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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