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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전망대 2012. 4. 8. 19:24

김승환 / MBC 보도국 문화과학부 차장

 

수치예보모델은 시시각각 변하는 기상현상을 예측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현대 일기예보의 핵심이다. 기온과 바람, 습도, 강수량 등 기상요소를 컴퓨터에 입력하면 지금까지 우리가 이해한 물리학과 화학 등 과학 지식을 총동원해 미래의 날씨를 계산해 주는 고도의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수치예보모델을 스스로 만들 능력이 없어 일본과 영국 등에서 만든 것을 사용했지만, 우리 실정에 맞는 독자적 수치예보모델을 갖기 위한 연구개발이 최근 시작됐다.

 

그런데, 2019년까지 1천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투입해 독자적인 모델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 미묘한 견해차가 나타났다. 그것은 크게, 수치예보를 가능한 바닥부터 독자적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입장과 외국의 우수한 모델을 우리 실정에 맞게 개선하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독자적’이라는 개발 목표에는 전자의 주장이 더 부합되지만, 막대한 세금을 쏟아 부은 사업이 목표 달성에 실패할 경우 그 비난과 책임을 누가 질 거냐는 염려도 타당하다. (물론 독자적으로 개발한다고 해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아니므로 100% 독자적일 수 없고, 외국 모델을 개선한다 해도 우리 연구진의 창의성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독자적인 수치예보모델 개발을 두고 나타난 이같은 견해차는 최근 국가 연구개발에 대한 고민과 맥이 닿아 있다. 올해(2012년) 정부 연구개발 예산이 처음으로 15조원을 넘어 16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최근 과학계 안팎에서는 가파른 양적 성장에 비해 내실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늘었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이하 국과위) 가 발표한 ‘2012년 정부연구개발 투자 방향안’은 이에 대해 “2천년대 이후 국가연구개발사업으로 추진된 대표성과 미흡” 이라고 말해 문제 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성과를 내기 위한 해결책으로 국과위는 ‘부처간 칸막이 현상을 해소할 수 있는 범부처 융합연구 추진’ 과 더불어 ‘창의적 원천기술 지원 및 도전적 연구 확대’를 제시했다.

 

현재 우리 연구자들은 어느 정도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안전한’ 연구를 선호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도전적인 연구는 결과를 예측할 수 없어 항상 실패할 위험이 있고, 국민의 세금이 투입된 연구가 성과를 내지 못하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연구비를 지원받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지원한 연구개발의 98%가 목표 달성으로 이어지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연구의 성패를 미리 알 수 있다면 진정한 R&D가 아니며, 예측 가능한 연구를 통해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성과가 나오기 힘들다는 데 더 많은 연구자와 정책 입안자들이 공감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연구재단이 2010년부터 도입한 ‘모험연구’ 과제는 환영할 만하다. 모험연구 과제는 최선을 다 해 연구했다면 ‘성과’를 내지 못해도 책임을 묻지 않는 ‘성실실패용인제도’가 특징이다. 실패를 통해 얻는 교훈, 예를 들어 망망대해를 항해하다 보물섬을 발견한 것도 성과지만, 이 방향으로 가면 아무 것도 안 보인다거나, 새들이 날고 나뭇잎이 해류에 밀려오는 것으로 보아 부근에 육지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등의 정보도 성과로 인정해 준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물론 아직은 시작단계라 연구비 규모도 작고, 혜택을 보는 연구자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기초과학은 특히 결과보다 새로운 시도와 창의적 아이디어, 과정이 중요한 분야다. 전체 R&D에서 기초과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올해는 35%로 역대 최대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기초과학 분야에서조차 가시적인 결과에 대한 중압감으로 연구자들을 짓누른다면 획기적인 성과를 지속적으로 만들기는 힘들 것이다.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한국에서 연구비를 받으며 연구했다면 결코 만유인력의 법칙과 상대성 이론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란 얘기를 유머로만 웃어넘기기 힘든 이유다.

 

많은 연구실과 산업시설, 정부 부처 등 취재 현장을 다니면서 과거에 볼 수 없던 두 가지 환경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첫째, 선진국을 뒤따라가기만 해도 충분했던 시대에서 이제는 우리 과학기술과 산업이 발달해 세계를 선도할 1류 기술에 대한 수요가 생겼다. 두 번째 변화는 우리 연구자들의 수준이 높아져 충분히 모험 연구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는 것이다. 사회적 요구와 연구역량이 맞아떨어진 지금이 모험 연구를 확대할 적절한 시점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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