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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전망대 2012. 5. 2. 10:06

박건형 서울신문 사회부 기자

 

한국인들이 스스로 한국 사회를 얘기할 때 가장 많이 거론되는 단어가 투명성이다. ‘불투명하다’, ‘빽이 있다’는 표현은 분야를 막론하고 막연하게 쓰이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 투명하지 않은 사회는 곧 부패한 사회로 이어진다. 한국반부패정책학회가 지난해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국 사회의 부패지수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의 85%는 한국사회가 부패했다고 믿는다. 2010년 기준 국가 부패지수에서 한국은 5.4로 39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6.97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얘기다.

 

투명성과 부패의 문제는 흔히 생각하듯 국회의원이나 기업인들만의 문제라고 할 수 없다. 과학계 역시 ‘남의 일’이라며 치부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19대 총선을 계기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논문 표절과 조작’이나 과학계의 젖줄인 ‘연구비’도 결국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선 논문은 학계의 자존심이자 ‘학문 성취도의 핵심’이다. 논문을 조작하거나 표절한다는 것은 결국 학자로서의 양심이나 최소한의 도덕성을 버렸다는 뜻이다. ‘실수’나 ‘관행’은 논문 문제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시해야할 가치를 소홀히 대했다는 자인이기 때문이다.

 

연구비 집행도 마찬가지다. 과학분야를 취재하다보면 매달 감사나 제보를 통해 연구비 횡령과 유용 등의 사례를 접하게 된다. 역시 규정대로는 연구가 불가능하다거나 개인적인 유용은 아니었다는 해명도 듣게 된다. 하지만 과학계는 어떤 학문 분야보다도 많은 연구비를 쓰는 집단이다. 올해 기준으로 정부가 지출하는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은 16조원에 이르고, 이중 직접적으로 과학계에 투입되는 돈도 4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GDP대비 4%에 이른다. 집행의 효율성이나 적합성을 문제삼을 수 있는지는 몰라도, 금액 자체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적다고 말할 수 없는 수준이다. 특히 이 돈은 대부분 ‘국민의 세금’에서 나온다. 수조원의 예산 중 극히 일부의 모럴헤저드(도덕적 해이)가 있더라도 겉으로 드러나는 순간 전체가 매도되거나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과학자는 정치인과 다를 바가 없다. 한두사람의 잘못‘이라도 곧바로 ‘그 바닥이 그렇지’라는 비아냥을 살 수 있고, 인식이 고착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학자에게 요구되는 ‘투명성’이란 어느 정도 수준일까. 또 과학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것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신뢰’로 귀결된다. ‘신뢰’는 한국보다 더 많은 금액을 더 오랫동안 기초과학에 투자해온 나라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사회가 극복해야할 과제로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는 것’을 꼽는다. 이는 물론 과학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예를 들어 과학선진국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독일이 ‘묻지마 투자’를 계속할 수 있는 배경에는 ‘하르낙 원칙’이 있다. 해당분야 최고 권위자에게 연구소를 맡기고, 그 사람에게 최대한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식이다. 독일(다른 과학 선진국도 비슷하다)은 한번 맡기면 그 사람에 대해 무한정에 가까운 시간과 믿음을 준다. 과연 한국에서도 이런 믿음이 가능할까 물어보자. 그 차이는 사회전반에 깔려있고,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예를 들어보자. 독일은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고학년으로 올라가는 시기까지 한 명의 담임이 학생들을 계속 맡아, 그 학생의 진로를 결정해준다. 만약 그 교사의 결정에 반발한다면, 법정에 서야한다. 교사에 대한 전폭적인 믿음과 신뢰가 없으면 시스템이 될 수 없는 구조다.

 

지난 수십년간 한국 과학계는 분명 양적, 질적으로 유례없는 성장을 거듭해왔다. 하지만 또다른 도약, 새로운 전환을 위해서는 ‘마인드’가 바뀌어야 한다. 과학자들이 ‘어떤 연구를 하는지도 모르면서’라며 과학에 대한 일반의 시선을 폄훼해서는 결코 답을 만들어낼 수 없다.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고, 결과가 나올 수 있을지 확실치 않은 소위 ‘노벨상급 연구’를 위해서는 결국 ‘투명성’과 ‘신뢰’가 뒷받침돼야 한다. 이를 만드는 것도, 혜택을 받는 것도 모두 과학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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