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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전망대 2011. 11. 28. 18:15
 신호경 연합뉴스 기자


"과학이 정치에 너무 휘둘린다"

취재 현장에서 만나는 과학기술계 인사들로부터 심심찮게 듣는 한탄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 동안 과학기술 분야에서 벌어진 굵직한 사안들을 따져보면, 이들의 넋두리를 근거 없는 피해의식 때문이라 흘려듣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른바 '단군이래 가장 큰 과학기술계 프로젝트', ‘기초과학 연구자들의 꿈’이라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과학벨트) 입지 선정 과정을 보자. 정부가 대선 공약이었던 과학벨트를 추진하기 위해 특별법안을 국회에 내놓은 것은 벌써 2009년 2월이지만, 이후 세종시 등 정치․지역간 이해가 첨예한 사안들과 맞물려 과학벨트 사업은 2년 넘게 말 그대로 '표류'했다. 2009년 9월 정운찬 총리는 세종시 정부청사 이전에 반대 의사를 밝혔고, 2010년 1월 정부는 세종시 개념을 '행정중심복합도시'에서 '교육과학중심 경제도시'로 바꾸는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했다. 이 수정안의 핵심이 바로 과학벨트였다. 그러나 5개월 뒤 결국 정부 수정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같은 해 12월 과학벨트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뒤에도 혼란은 계속됐다. 올해 초 대통령이 과학벨트 충청권 유치에 대해 "공약집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며 사실상 입지 관련 원점 검토를 시사하면서, 충청권의 반발과 함께 이젠 과학벨트 입지 선정을 둘러싼 지역간 갈등과 경쟁에 불이 붙었다. 이처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만신창이가 된 과학벨트 계획은 지난 5월 대전 대덕지구가 과학벨트 거점지구로 결정되면서 비로소 손에 잡히는 현실이 됐다. 그러나 사회 분열과 반목이라는 깊은 상처도 함께 남았다.

선정 과정뿐 아니라 과학벨트의 핵심인 기초과학연구원 소속 연구단의 배치도 지극히 '정치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과학벨트 추진계획안에 따르면 50개 연구단은 대덕단지뿐 아니라 탈락 지역인 광주와 경북권(대구·울산 포함)에 집중적으로 들어선다. 앞으로 선임될 연구원장과 연구원 과학자문위원회가 연구 수월성(역량)을 절대 기준으로 지역에 관계없이 연구단을 설치하는 것이 순리임에도, 거꾸로 정치․지역적 '할당'이 먼저 이뤄졌다는 게 과학계의 지적이다.

과학기술부가 역사 속에 사라진 것도 결국 '작은 정부' 명분을 앞세운 정치․행정 중심 사고와 판단의 결과다. 지난 2008년 정부 출범과 함께 교육인적자원부와 과학기술부 통합으로 교육과학기술부가 탄생한 지 3년 반여 만에 결국 부처 안에서 '과학기술' 관련 조직과 기능은 고사(枯死) 위기에 놓였다. 올해 들어서만 교과부 과학기술 관련 조직 가운데 1개 실이 해체되고, 1개 국이 완전히 없어지면서 인력 규모가 83명이나 줄었고, 교과부는 과학기술정책 총괄 업무와 원자력안전규제 업무에서 사실상 손을 뗐다. 이제 교과부에서 남은 순수 과학기술 관련 조직은 연구개발정책실(기초연구정책관․전략기술개발관․과학기술인재관) 달랑 하나뿐이다.

현실에서 과학이 정치에 종속되는 것은 사회구조적으로 다소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행정부를 포함한 정치권이 과학계로 흘러드는 ‘돈줄’과 ‘인사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확정한 '2012년도 연구개발(R&D) 예산 편성안'에 따르면 내년 국고를 통해 정부출연기관․대학․기업 등에 투자되는 국가R&D사업 예산은 무려 16조원에 이른다. 또 최근 임명된 기초과학연구원장 사례 등에서 보듯, 과학계의 주요 자리도 많은 부분 장관 등이 낙점해줘야 갈 수 있다.

그렇다면, 정치는 이 같은 막강한 권한에 걸맞게, 과학기술계의 미래와 비전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일까? 올해 국정감사 현장에서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위원들은 주로 등록금 대책, 대학 개혁 등 생색나는 현안에만 열을 올리고 역사교과서 속 '민주주의' 용어를 놓고 논란을 벌였을 뿐, 과학기술 정책과 미래전략 등에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국감 현장을 지켜 본 기자로서, 솔직히 서슬 퍼런, 핵심을 꿰뚫는 과학기술 분야 질문을 기억해 내기 어려울 정도다.

최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는 올해 과학기술 분야 국감의 최악(워스트) 질의를 발표했다. △모 연구원장의 개인비리에 대한 인신공격성 질의 △학술지 효과적 관리차원에서 심사 교신 내용 공개 주장 △출연연 SCI 논문 수가 적은 데 대한 페널티 주장 등이 부끄럽게도 질 낮은 '워스트' 질문으로 꼽혔다. 그러나 워스트 질의 당사자 국회의원들은 평가 결과를 수긍할 수 없다며 거칠게 항의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뉴턴이 ‘만유인력’이라는 고전물리학의 대원칙을 발견할 수 있었던 데는, 17세기 당시 영국 왕실의 과학기술에 대한 전폭적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쯤 과학자들이 앞뒤좌우 눈치 보지 않고, 뉴턴이 그랬듯 ‘진리의 바닷가에서 조개를 줍는 것’처럼, 자유롭게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정치가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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