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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전망대 2012. 1. 3. 20:21
이영완 조선일보 산업부 과학팀장


지난해 세상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여겨온 과학, 그 중에서도 가장 난해한 우주론과 갑자기 마주하기 시작했다. 6월 스위스의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과학자들은 우주가 탄생할 때 물질과 함께 만들어졌다가 사라진 반(反)물질을 16분 넘게 잡아두는 실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물질과 반물질이 만나면 강력한 에너지를 내고 둘 다 사라진다. 댄 브라운의 소설 '천사와 악마'는 이를 이용한 폭탄 개발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9월에는 역시 CERN에서는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100년간 현대물리학을 떠받치던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다음 달 발표된 노벨 물리학상은 최후의 순간에 빛을 내며 소멸하는 별을 관측해 우주가 점점 더 빨리 팽창함을 밝힌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우주를 팽창시킨 힘은 오늘날 ‘암흑에너지’로 불린다. 마지막으로 2011년이 저물던 12월 CERN은 이른바 ‘신(神)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Higgs) 존재의 실마리가 포착됐다고 발표했다. 1년간 강입자충돌기(LHC)에서 빅뱅(Big Bang·우주 대폭발) 직후를 재현하는 실험을 한 결과, 두 검출기에서 힉스가 나타났다가 더 작은 입자로 나뉜 흔적을 확인한 것이다.

일반인에게 과학, 그것도 기초과학은 먼 나라 얘기일 뿐이다.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울 때는 특히 그렇다. 아이가 초등학생일 때는 과학책도 많이 사주고 각종 과학행사에도 데려가지만, 중학교에 들어서면 바로 영어와 수학만 강조하는 것도 과학이 세상살이와 별 관계가 없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일반인의 시각에 기사를 맞추는 언론이 난해한 우주론 관련 연구결과를 앞다퉈 보도한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기초과학이 나중에 일상생활을 바꾼 신기술로 발전할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스타 트렉의 물리학’의 저자로 유명한 로렌스 크라우스(Lawrence M. Krauss) 미 애리조나 주립대 물리학과 교수는 기초 연구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오늘날 우리의 생활은 응용 연구가 아니라 기초 연구 투자로 이뤄진 것"이라며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없었다면 GPS(위성항법장치)도 작동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GPS는 고도 2만㎞에 떠 있는 위성으로부터 시간 정보를 받는다. 이런 고도에서 중력은 지상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중력이 약한 곳일수록 시간은 빨리 간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라 시간을 바로잡지 않았다면 GPS는 늘 틀리기 마련이란 말이다. CERN의 힉스 연구를 설명하던 국내 과학자도 “힉스의 발견은 100년 전 러더포드가 원자 안에 핵이 존재한다는 구조를 발견한 것과 비교할 만하다”며 “당시에도 원자핵 구조가 우리 생활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이 있었지만 그 덕분에 20~30년 후 원자폭탄이 발명되고, 원자력에너지 이용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또한 반물질 연구도 전자의 반물질인 양전자를 이용한 암진단용 양전자방출단층촬영장치(PET)같은 신기술을 낳았다고 했다.

하지만 걸핏하면 수조~수십조원이 들어간 기초과학 연구가 불과 몇 가지 신기술을 위한 것일까. 신기술이 필요하다면 굳이 어려운 기초 연구를 하지 않고도 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전파망원경으로 별의 탄생과 죽음을 연구하는 한 천문학자는 “솔직히 기초과학의 의미를 응용이나 기술로 따지는 것은 과학자로선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간의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는 것이 기초과학의 의미”라고 잘라 말했다.

한동안 우리는 국민소득 2만 달러를 선진국의 기준으로 삼고 그 고지를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선진국은 단순하지 않았다. 2만 달러를 넘고 나니 사회 곳곳에서 우리보다 나은 점이 눈에 띄었다. 기초과학 역시 그 하나다. 세상 사람들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평소 과학이라면 고개를 젓던 사람도 지난해에는 “빛보다 빠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주가 팽창한다는데 언제까지 그럴까”라는 질문을 했다. 팍팍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만이라도 광활한 우주를 생각해볼 때 우리는 스스로가 인간답다고 느낀다. 그것만 해도 기초과학의 가치로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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